도시에서 시민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요. 각종 도시 정책들이 화려한 비전을 뽐내지만,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활력이 없다면 그야말로 신기루나 환상에 가까운 이야기들일 겁니다.<장인>,<투게더> 등의 저서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짓기와 거주하기>에서 한국의 송도를 거론합니다. 최첨단의 기술로 만들어진 스마트시티 송도에 안전함과 청결은 있어도 시민들의 움직임과 교류에 기반한 활력이 없다며 실패한 도시로 규정한 겁니다. 세넷이 목격했던 것은 송도신도시 개발 초기의 모습이어서 지금은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시민들의 에너지와 활력이 도시의 성공을 가름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원칙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호 속속은 시민들의 참여와 도시의 활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전주대학교 원민 초빙교수의 ‘문화와 참여, 혁신이 교차하는 실험실’은 여러 문화도시가 실행하고 있는 문화도시의 리빙랩 사업이 갖는 의미를 짚어냅니다. 리빙랩은 시민의 참여에 기반해 일상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탐구하며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본질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민 교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시민들이 자신의 삶과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발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힘에 바탕할 때 시민들의 실험과 혁신이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문화로 OK’는 속초에서 2021년부터 진행된 리빙랩 사업입니다. 빛구슬 유지인 대표는 문화로 OK 사업에 참여한 것이 지역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는 한편으로,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속초의 전설을 QR코드 간판으로 만들고, 속초 이주민을 위한 가이드북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속초에 대한 애정을 키워내기도 했지만 일에 대한 욕구와 함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앞서 원민 교수가 이야기한 시민의 자기발견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의 문화도시 정책이 유럽문화수도의 영향을 받은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문화수도가 중동문화수도나 아메리카 문화수도에 미친 영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안태환 박사님의 글 ‘멕시코시티, 라틴아메리카 문화도시의 수도’는 아메리카 문화수도의 간략한 흐름과 함께 멕시코시티의 문화적 정체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먼 곳이지만, 라틴아메리카가 시작되는 멕시코시티를 슬쩍 엿보는 것만으로도 중남미에 정서적으로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미식문화도시 산세바스티안에서 속초의 미래를 엿보다’는 말 그대로 스페인 산세바스티안이 미식으로 문화도시가 된 과정을 추적하며 속초가 가야 할 길을 밝히고 있습니다. 미식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속초에게 이 도시는 많은 참고지점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산과 바다를 끼고 있어 식재료가 풍부한 환경, 바스크 지방의 전통요리 유산을 가꾸고 보존하는 100여개의 미식클럽, 새로운 조리법에 도전하는 젊은 셰프그룹의 실험, 산·학·관 파트너십으로 운영되는 바스크 컬리너리 센터,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대응까지 미식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유럽문화수도의 길을 먼저 걸었던 산세바스티안을 통해 속초의 앞날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 예술정신으로 도시를 그리다’는 속초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일태 디자이너의 이야기입니다. 공간 디자인의 부장이기도 한 그는 시민들의 상상력을 공간을 통해 새롭게 만드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속초의 매력이 세대를 건너 이어져야 한다는 그의 바람이 문화도시를 통해 열매맺을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